강의 이마를 짚어주는 저녁 어스름
배한봉
물고기에게 물은 살과 피, 아니 먼 조상들, 아니 물고기에게
물은 연인, 아니 아니 물고기에게 물은
달을 품고 있는 우주
나는 한 번도 물속에서 살아본 적 없다
물고기만큼 물을 사랑하고, 물과 키스하며
안과 밖이 맑은 물로 채워진 세계가 되어본 적 없다
지금은 강변 모래사장을 잃은 물이 뿌우연 침묵으로 아우성치는 시간
자궁을 긁어내고 혼절한 여자처럼
원치 않던 바닥을 긁어내고 누워 있는 강
나는 한 번도 물에서 살아본 적 없다고 세 번 부정하지만
내가 사는 세계의 안과 밖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과거의 나에게, 아니 아니 미래의 우리에게
보洑를 풀어 달라 아우성치는,
지금은 뿌우옇게 아픈 강의 이마를 저녁 어스름이 짚어주는 시간
—《문학사상》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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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 / 1962년 경남 함안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984년 박재삼 시인의 추천을 받아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8년 《현대시》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흑조黑鳥』『우포늪 왁새』『악기점』『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