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박정남
포옹을 가장 잘 하는 꽃은 연꽃입니다
연꽃이 저희 꽃잎들을 꼭 안고
피어 있습니다 아침 햇살에 분홍 꽃잎들을 열었다가
두 시가 되어 이내 입을 다물었습니다
스스로를 포옹함으로서
고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스스로 개폐하는 포옹의 힘을 잃을 때
연꽃들은 스르르 깍지 낀 손을 풀고
꽃잎들을 떨구었습니다
하얀 꽃잎 하나가 물 위로 떨어졌습니다
포옹입니다 열두 달 뱃속의 아가들도 스스로를 포옹해서
주먹 쥐고 잔뜩 웅크리고 앉아 저를 키워
단단해진 두상의 힘으로 캄캄하고도 좁은 질을 빠져나와
세상의 빛을 만났습니다
포옹을 가장 잘하는 열매들과 과일들은 모두 그 속에
자신들의 뿌리이자 하늘인 씨앗들을 잘 안아
여물게 했습니다 오래 포옹하고 집중함으로써
크고 충실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까만 눈망울 속에 태양이 뜨고
벌나비가 날고 꽃이 피는 한 천지가,
한 비밀이 오밀조밀하게 간직되어 있습니다
붉은 토마토 살 속의 황금빛 나는 씨앗들
둥그런 호박 속에 하얀 손톱 같은 호박씨들
탁, 탁, 터지면서 멀리 멀리 달아나고 싶은 봉숭아 씨앗들
하얀 깃털이 되어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
마음을 모으는 것도 포옹입니다
한 아침도 고요한 포옹입니다
한 아침의 꽃망울도 고요한 포옹입니다
고요의 빛이 얼굴에 환하게 피어오를 때까지
삼라만상들은 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습니다
포옹이 하루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현대시》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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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 / 1951년 경북 구미 출생.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자유시' 동인 참여. 시집 『숯검정이 여자』『길은 붉고 따뜻하다』『이팝나무 길을 가다』『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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