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호랑이를 만난 토끼가/안도현

김욱진 2011. 6. 21. 15:29

호랑이를 만난 토끼가

 안도현

 

 

 

호랑이를 만난 토끼가

어흥, 하고 입을 크게 벌리면

얼마나 좋을까?

 

토끼 이빨이 쑥쑥 자라나겠지

토끼 꼬리는 쑥쑥 길어질 거야

그때 호랑이 귀가 길쭉해지고

호랑이 꼬리가 짤막해지고

호랑이 발톱이 말랑말랑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토끼는 토끼여서

호랑이를 해치지 않을 거야

토끼는 눈만 깜박깜박할 거야

얼마나 좋을까?

 

호랑이가 깡충깡충 뛰어가도록

토끼는 가만히 길을 비켜주겠지

아, 얼마나 좋을까?

 

 

 

                                —《문학동네》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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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4년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닷가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간절하게 참 철없이』.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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