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모자/송찬호

김욱진 2011. 6. 21. 15:36

              모자

                       송찬호

 

 

 

난 어떤 밀고자를 알고 있다

저기 그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머리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난다

 

귓속으로 한 움큼 동전이 쏟아진다

자, 보세요 얼마나 잘 익었는지……

그러나 난 아쉽게도 이 빵을 모자로 뒤집어야 한다

 

난 모자 앞에서 늘 망설이는 편이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집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처럼

난 하나의 모자를 고른다, 그렇게

한 권의 훌륭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내 고단한 몸을 누일 때 그것이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올려지겠지

죽은 나비를 집어올리듯이

 

저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 인사는

이것을 만지작거리며 반가워하는 것이다

이 경의를, 빵 굽는 냄새 나는 이 모자를

 

 

 

                              —《시와 세계》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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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학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으로 등단.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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