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여자
김기택
눈을 떠보니
어느 작고 어둡고 뚱뚱한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뒷덜미에서 철커덕, 문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너무 크고 무거웠으므로
끊임없이 마음을 낮게 구부려야 했다.
창문을 찾아 기웃거릴 때마다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벽도 따라 움직여서
어디가 바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로
빛이 뚫려 있는 콧구멍에다 얼른 얼굴을 들이밀고
급한 대로 차가운 빛줄기 몇 가닥을 들이마셨다.
숨통을 통해 바깥이 조금 보였다.
밖으로 나가려고 몇 차례 몸을 뒤틀어보았으나
모든 문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고
나를 찢거나 부수지 않고는 열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아홉 개의 좁은 구멍을 찾아 간신이 빠져나간 건
거친 숨과 땀방울과 뜨거운 오줌과 입 냄새뿐이었다.
숨 쉴 때마다
나를 가둔 벽은 출렁거리며 뒤룩뒤룩 융기하였으며
브래지어는 팽팽하게 부풀었다.
엉덩이며 젖가슴, 겨드랑이, 사타구니까지
막힌 숨이 가득 차 있었고
터져나가지 못하도록
온갖 시큼하고 구린 비린내로 단단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어 살펴보니
거울 속이었다.
어항 같은 눈을 뻐끔거리고 있는 얼굴이
살 속에 숨은 눈으로 살살 밖을 쳐다보는 얼굴이
포르말린 같은 유리 안에 담겨 있었다.
나자마자 마흔이었고 거울을 보자마자 여자였다.
그렇게 관리를 하지 않고서야
언제 시집이나 한 번 가볼 수 있겠느냐는 소리가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들어왔다.
그게 구르는 거지 걷는 거냐고
내 뒤뚱거리는 걸음을 놀려대는 소리가
벽을 뚫고 살을 콕콕 찌르며 들어왔다.
움직일수록 더 세게 막혀오는 숨통을 놓아주기 위해
나는 방 하나를 통째로 소파 위에 누이고
개처럼 혀를 다해 헉헉거렸다.
—《현대문학》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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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 1957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바늘 구멍 속의 폭풍』『사무원』『소』『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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