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섬말 시편 갯골에서 (외 2편)/김신용

김욱진 2011. 6. 21. 15:50

    섬말 시편 갯골에서 (외 2편)

        김신용

 

 

 

소래 포구에서 뱀처럼 꾸불텅 파고든 갯골을 본다

뻘이 제 육신을 열어 터놓은 저 물길

서해에 뿌리 박은 거대한 나무처럼 보인다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어서도 힘차게 가지 뻗은 듯하다

한 때, 소래 벌판의 염전들은 그 가지에 매달려 푸른 잎 나부꼈을 터

결 고운 옹패판 위에 희디흰 소금의 결정들을 수확했을 터

지금은 나뭇잎 다 져 앙상한 고사목 같은 형상으로 놓였지만

해주도 소금창고도 허물어져 갈대밭에 누운 지 오래지만

뿌리는 아직 살아 밀물 때마다 염수를 밀어올린다

스스로 무자위 밟아 수액을 끌어올린다

뻘밭에 세한도 한 폭을 새겨놓기 위해

바다는 오늘도 墨紙가 된다

그 갯골이 커다랗게 입 벌린 상처처럼 보이지만

아물지 않는 손톱자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뒤틀리고 휘어진 蛇行의 갯골에는

아직 새 날아온다 뭇 새들 갈대밭에 집 짓는다

뻘 속에는 혈거(穴居)의 게들 , 흘림체로 별사를 쓰듯 기어 나온다

저 뿌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墨紙가 살아 있는 그늘이라고

 

 

 

섬말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가시 돋은 연꽃이 있다기에 연꽃 마을*에 가서

가시연을 보고 온 날, 제 몸의 털 다 세워도 올올한

남루 하나 세워두지 못한 생, 갈대숲에 기대 놓는다

화음은 사금파리로 부서지는 봄 햇살인지 눈이 부셔

천 길 벼랑이듯 아찔해 눈 감으면, 가시 세워 피운 연꽃

그 자태가 더 눈에 따가워, 바람 속에 수천수만의 몸뚱이를

서로 부대끼며 견디는 갈대숲을 본다. 그 갈대 하나씩 떼어 놓으면

바람 잠시 앉았다 갈 의자 하나 되지 못하지만, 수천수만의 몸

서로 얽혀 있으니 저렇게 바람을 견디는 울이 되는구나

울타리가 되는구나. 지난날의 산1번지 같은

그 密生이 눈물겨워 가만히 귀 기울이면, 무엇인가

수런거리는 소리 날갯짓 소리 알을 품고 부화의 순간을 기다리는

줄탁의 소리, 아, 화엄이 여기도 있었구나!

귀 떨어진 소반에 금간 그릇 두어 개뿐인 생이라도

저 울타리 안에서는 살아 있는 것이 되는구나. 빛나는 것이 되는구나

야윈 몸끼리 서로 얽혀 만든 그 울이 갈대들의 연꽃이었구나

가시 돋힌 연꽃도 보리의 꽃을 피운다기에, 연꽃 마을에 가서

가시연을 보고 온 날, 제 생 다 허물어뜨려도 올올한

남루 하나 세우지 못한 마음, 그 울에 기대어 놓는다

햇살 눈부시게 고여 있는, 그 바자울에 기대 놓는다

 

 

————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연꽃단지

 

 

 

섬말 시편 나문재를 위하여

 

 

 

언제나 물기 질퍽한 갯벌에서 살아 늘 퉁퉁 불어 있는 것 같은

햇볕 들면 소금기 허어옇게 드러나는 그곳에서 살아

몸의 생김새도 염전에서 소금을 져 나르는 지게를 닮은

생애 또한 짜디짠 염수를 밀어 올리는 무자위를 닮았는지

퉁퉁 불어 있는 몸속은 언제나 소금기를 담고 있어

쉬 녹슬고 풍화되는 소금창고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알까? 저것을 먹으면 피를 맑게 해준다는 것을

일이 생을 맑게 하듯이, 몸속의 독소 또한 씻어준다는 것을

비록 들의 쑥과 명아주 다 뜯어먹고, 산의 송기마저 다 벗겨먹어

이제 뭘 먹어야 하나? 하고 망연히 갯벌을 바라보는 세월일 때

그곳에 아직 파아랗게 돋아 있는 것이 보여, 기쁨에 겨워

저기, 남은 것이 있네! 하고 소리쳐, 나문재로 불리웠다지만

갯물에 젖어 늘 퉁퉁 불어 있는 퉁퉁마디와, 볕 아래서

살아 있기 위해, 몸 색깔 자꾸 바꾸는 칠면초와 이웃해 살지만

한평생 척박한 염토를 일구며 살아, 일손 놓아 본 적 없는 사람

언제나 등에 소금꽃 허옇게 핀 염생식물 같은, 그 사람을 닮은

사람들은 알리, 얼핏 보면 뻘밭의 갈대숲처럼 허물어져 보이는 모습이지만

짜디짠 염수를 호흡해, 맑은 숨결 거르고 있는 저 한 생을

 

 

 

                                —시집 『바자울에 기대다』

 

-----------------

김신용 /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개 같은 날들의 기록』『몽유 속을 걷다』『환상통』『도장골 시편』『바자울에 기대다』. 시신집 『부빈다는 것』.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앉은뱅이저울/함민복  (0) 2011.06.21
뿌리의 기억 (외 2편)/김광규  (0) 2011.06.21
파도 소리/장석남  (0) 2011.06.21
시선을 기리는 노래 (외 1편)/정현종  (0) 2011.06.21
검색 공화국/문성해   (0) 201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