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앉은뱅이저울/함민복

김욱진 2011. 6. 21. 15:56

         앉은뱅이저울

               함민복

 

 

 

물고기 잡는 집에서 버려진 저울 하나를 얻어왔다

 

저울도 자신의 무게를 달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양 옆구리 삭은 저울을 조심 뒤집는다

 

삼 점 칠 킬로그램

무한천공 우주의 무게는

0이더니

거뜬히 저울판에 지구를 담은

네 무게가 지구의 무게냐

뱃장 크다

지구에 대한 이해 담백하다

 

몸집 커 토막 낸 물고기 달 때보다

한 마을 바지락들 단체로 달 때 더 서러웠더냐

목숨의 증발 비린내의 처소

검사필증, 정밀계기 딱지 붙은 기계밀정아

생명을 파는 자와 사는 자

시선의 무게에서도 비린내가 계량되더냐

 

어머, 저 물고기는 물 속에서 부레 속에

공기를 품고 그 공기로 제 무게를 달더니

이제 공기 속에 제 몸을 담고 공기 무게를 달아보네

봐요, 물이 좀 갔잖아요

푸덕거림 버둥댐 오역하던 이도 지금은 없고

옅은 비린내만 녹슨 페인트 껍질처럼 부러진다

 

저울은 반성인가

 

늘 눌릴 준비가 된,

바다 것들 반성의 시간 먹고 살아 온

간기에 녹슨 앉은뱅이저울은

바다의 욕망을 저울질해주는

배 한 척과 같은 것이냐

 

닻 같은

바늘을 놓아버릴 때까지 저울은 저울이다

 

 

 

                   —제6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수상작

                                           《시작》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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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 1962년 충북 중원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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