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위험한 술집 (외 1편)/문정희

김욱진 2011. 6. 21. 15:57

위험한 술집 (외 1편)

 

   문정희

 

 

 

목숨이 있는 한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다

오늘 이 술집은 위험하다

눈이 빨간 짐승들이 살의를 번뜩이며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

오늘 이 술집은 아름답다

 

위험하지 않으면 아름다움도 없다

무사와 평화를 원하거든

무덤으로 가라

위험하지 않은 곳은 무덤뿐이다

 

술에 취한 짐승들이 난바다에서 출렁거린다

시큼한 말구유 냄새를 풍기는

사랑은 물고기보다 매끄럽다

바다는 허리를 끌어안기도 전에

솨아솨아 파도소리를 낸다

싱싱한 비린내가 치솟는다

날카로운 눈알들이 비틀거리는

오늘 이 술집은 위험하다

 

 

 

                            —《시와 사람》 2011년 봄호

 

 

당신의 단추

 

 

 

당신의 단추는 신호등처럼 많다

열어도 열어도 난해한 숨결이다

사방에 나풀거리는 차가운 물방울들

혹은 동굴처럼

깊은

당신의 계단

 

당신이 열리는 날은 언제일까

하늘이 감추어둔 뜨거운 사랑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날은

붉은 심장이 석류알처럼 한꺼번에 열리는 날은

 

언제일까

그러면 당신 앞에 거침없이 나를 열어야 할 시간

당신의 단추를 열기에만 골몰한 나머지

정작 나의 단추를 어떻게 열 줄 몰라

나는 얼음처럼 날카롭게 그 자리에 서버릴지도 몰라

 

당신의 단추를 연다

열어도 열어도 내가 들어설 자리 없는

바위, 혹은 당신의 계절

당신의 성전의

외로운 자물통

 

 

 

                          —《문예중앙》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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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나는 문이다』『다산의 처녀』외.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등 다수.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창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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