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악보/도종환

김욱진 2011. 6. 21. 16:00

           악보

                  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시와 표현》 2011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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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시 '고두미마을에서' 발표하며 문단 데뷔. 시집 『고두미마을에서』『접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해인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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