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시와 표현》 2011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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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시 '고두미마을에서' 발표하며 문단 데뷔. 시집 『고두미마을에서』『접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해인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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