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내리는 터전
허만하
별빛 고운 생일날 밤, 소년은 활을 들고 초원에 나선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떠난 화살이 겨누는 것은 밤하늘의 별이다. 초원 넘어 펼쳐지는 사막의 모래알만큼 수가 많은 별들. 화살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화살을 맞은 별은 한줄기 파란 꼬리를 흘리며 홀연히 하늘에서 사라진다. 소년은 자기가 겨누는 것이 별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운명이란 사실을 알 리 없을 만큼 어렸다. 언젠가는 가슴 밑바닥에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 때문에 눈시울이 왈칵 뜨거워지고, 하늘 가득히 뿌려져 있는 별이 물기를 머금고 안개 넘어 바라보는 세상처럼 흐려 보이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소년은 청순했다. 그때만 해도 활을 잡은 소년은 푸른 꼬리를 달고 하늘을 떠나는 별의 뜻을 헤아릴 성숙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의 소년은 오늘도 초원에 나선다. 화살을 맞아 땅에 떨어졌을 별 부스러기를 찾아, 풀 그늘을 뒤지는 것이다. 보라색 풀 그늘에서 반딧불처럼 깜박이고 있을 자신의 별 조각을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 계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아침 이슬 반짝이는 초원을 야생의 사슴처럼 밟는 것이다.
—《작가세계》 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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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 1932년 대구 출생. 경북대 의대 졸업. 1957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시집 『해조』『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야생의 꽃』『바다의 성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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