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채널

버려진 것들

김욱진 2013. 10. 17. 21:36

     버려진 것들

  

  

  

나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학교 운동장 설거지를 한다

왼손에는 행주 대신

어리광부리는 아침햇살 꾸러미 한 통 들고

오른손에는 고무장갑 대신

가위 같은 족집게를 손아귀에 끼고

이것저것 주워 담는다

커피 향 쥐꼬리만큼 풍기는 일회용 컵 입에 물고

밤새 사랑 고백한 과자 비닐봉지도   

일회용 떡볶이 그릇에 주둥이 푹 파묻고

엄마 품속인 양 곤히 잠든 빈 병도  

떨그럭떨그럭 소리에 외톨이가 돼버린 빈 캔도

화려했던 지난날이 있었음을

매점 앞 쓰레기 분리수거함까지 함께 걸어오는 동안

노숙자들 이름 아래 빼곡 적힌 이력을 훔쳐 읽고서 알았다

되돌아보면, 부끄럽고 어색한 몸짓이었지만 

외길 모퉁이서 틔운 나의 꿈은  

버려진 양심 주워 담을 통 하나 마련하는 것

나는 그 통의 길목 찾아 나섰다

쉬는 시간마다 

종이비행기 접어 창밖으로 날리는 손

바닥과 등 사이 오가며 

잔심부름하는 말 채찍질하여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그 녀석

빗자루 쓰레받기 들고

운동장으로 펄떡펄떡 달려와

나 대신

일회용 청소부 노릇 톡톡히 하며 회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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