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삼백 살은 족히 된 느티나무 한 그루
도성암 법당 앞에서 인연법문을 하신다
얘야, 혓바닥 길게 빼물고
천천히 내 머리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와
물구나무선 채로 땅바닥 한번 내려다 봐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겠지만
가진 것 없이
낯선 세상 부딪히고 살아가려면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습習 하나쯤은 익혀둬야 해
달팽이 형 한번 봐
햇빛조차 들지 않는 동굴에서
혼자 땟거리 구해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오체투지로
고작 왔던 길 되돌아가는 걸
이곳 노스님 한 분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한평생 따라하셨는데
얘야, 길 없는 길 닿고 보니
너의 발걸음도 우연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