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채널

애벌레

김욱진 2013. 10. 17. 21:40

        애벌레

 

 

 

삼백 살은 족히 된 느티나무 한 그루

도성암 법당 앞에서 인연법문을 하신다

얘야, 혓바닥 길게 빼물고

천천히 내 머리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와

물구나무선 채로 땅바닥 한번 내려다 봐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겠지만

가진 것 없이

낯선 세상 부딪히고 살아가려면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하나쯤은 익혀둬야 해

달팽이 형 한번 봐

햇빛조차 들지 않는 동굴에서

혼자 땟거리 구해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오체투지로

고작 왔던 길 되돌아가는 걸

이곳 노스님 한 분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한평생 따라하셨는데

얘야, 길 없는 길 닿고 보니

너의 발걸음도 우연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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