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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타임

브레이크 타임김욱진  시래기 국밥집 앞 지나가다문득 시래깃국 먹던 어린 시절 떠올라고 생각 고대로 데리고식당 문고리 잡아당겼더니 문이 잠겼다브레이크 타임, 3시부터 5시까지장사를 하지 않는다고두 시간이면 무밭 다 갈아엎고도 남는 시간인데그래, 올가을 무도 똥값이고시래깃국 장사해서 먹고 살기 힘든 건너나 나나 마찬가지그래도 밥때 놓친 사람들 허기 채우긴 그저 그만인데설마, 시래기가 쓰레기 되어버린 걸까손님은 아무도 없고나 혼자 길바닥 버려진 무청 한 이파리 주워너의 전생은 무, 내생은 시래기그놈의 한 생 물고 늘어진 나는무 한 입 베어 물고시래기 되었다 무 되었다한 시간 남짓 온갖 궁상떨면서기다렸다, 나도 무도 아닌 나무 의자에 앉아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무의 자를 만나고 있었다시래기는 오간 데 없고무..

♧...발표작 2024.11.07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김욱진  삼식이가 되어버린 요즘 밥값 한답시고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우르르 한꺼번에 다 몰려온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 숟가락 젓가락서로 뒤엉켜 아우성치다틈새로 물이 스며들면저거들끼리 물살을 밀고 당기면서달그락달그락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아무 생각 없이, 내 손 가락이 물레 잣는 노랫가락처럼 휘어고개 삐죽 내밀고 쳐다보는숟가락 젓가락에 먼저 가닿을 때도 있다그럴 때마다평생 설거지하고 살아온 집사람잔소리 한 바가지싱크대로 확 쏟아 붓는다대접받는 그릇이 먼저지 밥하고 국 없는 밥상이 어디 있냐고금세 나는, 어물쩍 이 접시 저 접시 눈치 보며잔소리까지 몽땅 받아먹은밥그릇 국그릇 설거지하고, 맨 나중에속 새카맣게 탄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2023 도동문학 연간집)

♧...발표작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