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넝쿨의 푸른 밭들
김신용
철재로 된 조립식 건물의 벽에 마른 다마쟁이 넝쿨들이 매달려 있다
누가 줄기 밑둥을 낫으로 잘라 버렸는데도
마른 넝쿨의 줄기들은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
철제로 된 벽면,페인트로 매끄럽게 도장이 된 표면을
미끄러지지 않고 기어 올라 앞들을 피운 담쟁이 넝쿨,넝쿨들
그 끈질긴 포복의 생리가 궁금해,바싹 마른 넝쿨의 줄기를 떼내어보니
엷게 도장이 된 철제 벽면의 페인트 속을 파고들어
무수히 발자국 박아 놓은 담쟁이 넝쿨의 깨알 같은 발,발들
모래밭에 찍혀 있는 새의 작은 발자국 같은 그 앙징맞은 무늬,무늬들
당쟁이 넝쿨은 새의 발자국 같은 그 여린 발들로,마치 바느질을 하듯
한 땀 한 땀 무거운 줄기들을 밀어 올려 푸른 잎사귀들을 피웠을 것이다
푸른 잎사귀들을 피워 올려,햇살을 오디처럼 따먹었을 것이다
오디 먹은 입은,푸르게 푸르게 웃었을 것이다
그래서 담쟁이 넝쿨은 자신의 줄기 밑둥을 누가 낫으로 날카롭게 잘라 놓고 가도
그 기억으로 빙판 같은 차가운 철제 벽면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견뎠을 것이다
줄기 밑둥을 잘려,바싹 말라 풍화되어 가면서도
오디 먹어 푸른 잎은,아,푸른 입들을 매단 줄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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