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생각
이문재
모슬포 바다를 보려다가, 누가, 저 서편 바다를 수은으로 가득 채워 눈 못뜨게 하나, 하다가, 혹, 허리가 꺾어진 적이 있다.
수평선은 째앵하고 그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비늘처럼 미끈거리던 바람이 위이이이잉 몸을 바꾸는 것이었다. 바람은 성큼
몸을 세우더니, 그 무수한 손을 뒤로 제끼며 생철 쪼가리들을 날려대는 것이었다. 은박의 바람이 바다 위에서 거대한 먼지를 일으키는 거였다.
황홀하고 또 무서워, 머리를 가랑이에 박았다가 눈을 떴는데,
아, 섬은 거꾸로 서 있었다. 그 때 그 옛일들이 생철 쪼가리에 범벅이 된 채 나뒹굴고 있었다. 살점과 핏방울들이 순식간에 바람의 속도로 올라 앉는 것이 보였다. 거대했다. 아 퍽퍽 쓰러진 것들이 바람에 풀썩거리는 모양이 황막하고 광막했다. 나는 가자미처럼 납작하게 땅에 엎드려 두 눈을 감았다. 눈물이 피융피융 튀어나가고 있었다.
다시는 그리움이 내일이나 어제 쪽으로도 옮겨 가지 않으리라.
그래, 그리움의 더께가 녹슬어 을씨년으로 변하겠구나. 생각의 서까래도 남아나지 않았겠구나. 그래, 이 폐가의 흔적이나 한 채 껴안고 살면 되는 거지. 생철, 아니 날치의 바람아, 이제 그만 후두둑 멈추어라, 하고, 고개를 한 뼘 드는데, 저 납의 바다가 느물, 아니 기우뚱거리는구나, 하는데, 쌔애애애앵, 퍽, 오른쪽 눈에 생철 조각 하나가 박혔다.
누군가 떠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남는다
그해 삼월 모슬포 바다에 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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