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현해탄을 건너다

김욱진 2010. 5. 23. 22:42

  현해탄을 건너다

        -선상에서-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경음악

틈새로 울려 퍼지는 뱃고동소리

바닷길이 열리고

항구의 불빛 점점 뒷걸음질쳐 오면

나는 가만 눈을 감는다

누군가 허전한 배의 꼬리 물고

자꾸 뒤따라오는 것만 같다

여태 무심히 대했던 조국 하늘의 별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겹게 숨쉬는 땅위의 집들과

더러 힘겨운 세상살이, 말끔히 씻어주곤 하던 바다 내음

어둠 속으로 살며시 어머니처럼 마중 나와

내 가슴 뜨겁게 문질러댄다

선조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백의종군해 달려갔던 사내처럼

섬이란 섬 다 경계하며

대마도를 지날 무렵

칭얼거리던 휴대폰마저 가쁘게 숨 몰아쉰다

난생 처음 밤배를 타고

그대에게 마지막 떨림의 여운을 남기는 순간,

칡넝쿨처럼 얽히고설킨 생각들과

말 못할 부끄러운 몸짓들

곤히 잠든 밤바다를 흔들어 깨운다

배는 어느새 잔뜩 취해버리고

꿈꾸던 아기별들은 재롱이 한창이다

어디선가

숨바꼭질하며 달려온 초승달은

알몸으로 저 바다에 누워

나랑 벗하며 사이좋게 노를 젓는다

 

 

                  (시문학 200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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