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들깻잎을 묶으며/유홍준

김욱진 2015. 10. 8. 11:55

           들깻잎을 묶으며

               유홍준

 

 

추석 날,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어린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잎 이파리처럼 부풀고

맞다 맞어,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연거푸 함박웃음을 날린다

어렵다 어려워 말 안해도 빤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 쌀밥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로 흰구름 몇 덩이 지나가는 추석 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어보는

아아, 모처럼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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