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집’과 ‘바람’의 시
-김욱진 시집『행복 채널』
노드롭 프라이(N․Frye)의 말처럼 겨울의 뮈토스mythos가 ‘아이러니’와 ‘풍자’에 해당된다면, 김욱진의 이번 시집은『노래의 책』이 아닌「겨울의 책」이다. 그것은 특정 어조와 시어에 잘 나타나 있으며, 종교(불교)와 사회, 자연과 자아, 그 어떤 주제의 시편에 있어서도 예의 시선과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 염천을 떠돌던 글귀/한 아가리에 받아먹고/봇물처럼 차오른 말씀들 (......) 잡귀는 물러가고/싯귀만 남았거라//훠이/훠이//이 늘그막에/내게 글신이 내렸도다 (「시마」)
• 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그중에 으뜸은/우주宇宙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빈집」)
• 낫살께나 먹었다고/유세부리지 말고 살어/석가모니 할아버지 한번 봐 (「지팡이․1」)
• 벼슬이 판을 치는 세상/눈치를 보며, 나는/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늦가을 오후」)
• 너는/수줍어하는 나의 사타구니에/불 질러놓고 달아난 방화범 아니더냐 (「옻나무」)
등에서 보듯이, 말의 흥감과 삶에 대한 비판적/해학적 태도와 수용은 새로운 시적 방법론의 하나로 여겨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에 대한 긍정과 행복의 원(願/圓)으로 귀결된다. (“집안 액운 다 태워달라며/밤새 빌던 정월 대보름 새벽 달빛 속으로/푹 빠져들고 싶을 때가 있다”,「행복 채널」) 그리고 ‘누에=보살’(「누에보살」)과 ‘은행나무=부처’라는 은유의 시학은 인간화된 자연을 표방한다. 그 인간도 성인聖人의 반열에 놓이고 보면, 성聖/속俗은 결코 분리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한 그는 ‘집’과 ‘바람’의 시인이다. 이 경우 집은 곧 몸이며, 몸을 가진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바람 속에는 그의 관절 닳은 소리(“헛바퀴 돌리듯/나의 왼 무릎에서/관절 닳은 소리가 난다”,「닳은 소리」)와 향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골호(骨壺)에 가득 차 있다. 우포 연작의 경우도 자연과 환경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사랑을 개성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마詩魔에 붙들려 창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백운거사처럼, 행복채널의 시인도 이번 시집을 통해 고통스럽지만 더욱 즐거운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김상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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