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붙이다
좌익우익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고욤나무에다 감나무 접붙였다
감나무 눈을 떼다
억지로 고욤나무 눈에다 흙을 바르고 붙였으니
둘 다 눈앞이 캄캄하고 어리둥절했겠다
눈과 눈 경계 허물어진 봄이 되자
고욤나무에서 감나무 이파리 돋았다는
소문이 온 동네 파릇파릇 퍼졌다
눈 떼 붙이고 재미를 본 할아버지
비알 밭에다 면소 다니는 아버지 눈마저 접붙였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좌익으로 몰려
하루가 멀다 않고 감시의 눈초리 피해 다녀야만 했던 아버지
부득이 왼 눈을 떼다 오른 눈에 다급히 접붙였다
서로 다른 두 눈 만나 한 뿌리 내리고 사는 길 틔우며
밭떼기 머슴 노릇하던 아버지
그 이듬해 된서리 맞고 말문 닫더니 눈 감으셨다
고욤나무에 아버지 주먹 같은 먹감 주렁주렁 달렸다
일찌감치 좌우익 바람 스쳐지나간 고향 마을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마흔일곱 먹은 아버지 먹감나무 앞에서
어린 고욤나무 눈물 닦아주고 서계신 아버지,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