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조용한 혁명

등나무 사는 얘기

김욱진 2016. 11. 9. 19:28

            등나무 사는 얘기   

  

 

계산 성당 맞은 편 

등줄기 뻗어 기둥 세우고 지붕 덮고 사는

등나무 집 한 채

해 달 별 번갈아 와서 자고 간다 

소소한 집안일은 손수 다하고

바깥일은 제집처럼 드나드는 새들이 다 봐준다  

등꽃 흐드러지게 핀 봄이면

사랑 고백하는 청춘남녀 머리 위에 꽃비 내리고

굽은 등이라도 한번 쭉 펴고 싶은 여름이면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 하룻밤 묵을 처소 되어주고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면 

외진 길 구불구불 돌아가는 시인들

낙엽 무질고 앉아 한참 머뭇거리다 가는 곳 

등골 오싹해지는 겨울이면

등신처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등에 업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곱사등이

꼬불꼬불 되살아 곱사춤 덩실덩실 추는 곳

주인은 태어날 적부터 등이 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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