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사는 얘기
계산 성당 맞은 편
등줄기 뻗어 기둥 세우고 지붕 덮고 사는
등나무 집 한 채
해 달 별 번갈아 와서 자고 간다
소소한 집안일은 손수 다하고
바깥일은 제집처럼 드나드는 새들이 다 봐준다
등꽃 흐드러지게 핀 봄이면
사랑 고백하는 청춘남녀 머리 위에 꽃비 내리고
굽은 등이라도 한번 쭉 펴고 싶은 여름이면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 하룻밤 묵을 처소 되어주고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면
외진 길 구불구불 돌아가는 시인들
낙엽 무질고 앉아 한참 머뭇거리다 가는 곳
등골 오싹해지는 겨울이면
등신처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등에 업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곱사등이
꼬불꼬불 되살아 곱사춤 덩실덩실 추는 곳
주인은 태어날 적부터 등이 굽었다
'♧...참, 조용한 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도 이상화가 살아있더구만 (0) | 2016.11.09 |
---|---|
꾸벅, 절하는 섬 (0) | 2016.11.09 |
접붙이다 (0) | 2016.11.09 |
그늘 (0) | 2016.11.09 |
상생의 손 (0) | 2016.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