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에 와서 분홍을 태우다
변희수
그날 당신은 내게 폐가 한 채 넘겨주고 떠났네
늑골 같은 담벼락에 삐딱하게 기대선 개복숭나무 한 그루
마지막 담밸 빨듯 붉은 꽃들을 뻑뻑 피워대고 있었지
아무 대문이나 불쑥 당신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한 모금씩 낡은 골목의 폐부로 스며드는 분홍
분홍이란 폐가에 와서도 환해질 수 있구나
삭은 기둥이며 서까래며 어두운 구석마다
쿨럭쿨럭 신음들이 새어나올 것 같은데
객지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나는 말이 없어지고
적막보다 깊은 연소를 생각해보네
살과 뼈가 남아있는 마음을 태워
폐가에 와서 분홍을 얻네
처음 배운 담배처럼 메케하게 어리는 꽃그림자
그날 나는 남은 마음을 태우러 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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