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언제나 우리 앞을 지나가고
변희수
잘 있었지, 잘 있었어
산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려오는 사람이 올라가고 있는 사람과
나누는 인사
몸속에 쌓인 어혈을 풀어내듯
황엽이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남은 초록을 간신히 걸치고 서 있는 숲속에서
언제 밥 한번 먹자던 약속을 떠올리는 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이파리들처럼
피가 되어 돌지 못했던 그런 약속들은
언제나 언제라는 말에 슬쩍 기대어 있다
그것은 언제나 푸른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파릇한 것이어서
우리는 서로 엇갈리는 곳에 서서
어두워진 혈색을 털어내려는 사람처럼
언제라고, 다시 약속을 한다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처럼
우리가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인사할 때
잘 있었지, 잘 있었어
언제는 언제나
메아리처럼 우리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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