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 삶의 해우소(解憂所)
정호승
어떤 자리에 앉을 때 나는 가능한 한 창을 등지고 앉는다. 창이 통유리로 돼 있어서 바깥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창밖 풍경이 나의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 앉은 상대방이 나를 바라봤을 때 자연히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럴 경우, 나라는 인간이 아름답지 않은 존재라 할지라도 나의 배경이 되어준 그 풍경 때문에 내가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가 "지금 창밖에 눈 내려요!" 하고 말했을 때,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배경으로 하고 앉아 있는 나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이렇게 나의 배경이 되어주는 창밖 풍경, 그것이 바로 나의 시다. 시는 내 삶의 그러한 배경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배경이 되어준 시가 없었더라면 내 삶은 아름다움을 잃고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물론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꼭 풍경을 중요시한다. 내가 어떤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것인가 하는 점을 우선시한다. 그것 또한 나의 배경이 된 풍경이 나를 아름답게 해주기 때문이다. 부석사 석등이 나의 배경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선암사 해우소 앞에서 '뒷간'이라는 글씨가 써진 현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또 어떠한가. 해우소(解憂所)는 말 그대로 '근심을 푸는 곳'인데, 내 영혼의 근심을 푸는 곳이 시라면 시는 내 삶의 해우소다.
우리나라 전국 사찰에 있는 그 많은 해우소 중에서도 나는 선암사 해우소를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동안 선암사 해우소를 몇 차례 찾은 적은 있지만 지난 여름날 찾아가 본 해우소를 잊을 수 없다. 입구에서 보면 단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아래층에서 보면 2층 누각처럼 보이는 해우소는 그때 마침 해체 보수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출입이 금지된 위층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뜻밖에 해우소 밑바닥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대소변이 떨어져 쌓이는 곳이었다. 처음엔 어두컴컴했으나 곧 실내가 훤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은 깨끗하게 치우져 있었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낙엽과 함께 켜켜이 인분이 쌓여 있던 곳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측면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문을 통해 맑은 바람과 햇살이 솔솔 들어왔다. 일반인에겐 해우소 바닥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없으므로 보수공사 중인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안에 서 있다가 그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해우소 위층을 받치고 있는 시커먼 바위와 구부정한 나무기둥들의 그 숭고한 자태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내 몸체만 한 바위 몇 개가 웅크린 채 놓여 있었고, 그 바위 위에는 나무기둥이 몇 개 서 있었는데, 그 기둥들이 위층의 모든 무게를 받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온갖 똥오줌을 뒤집어쓰면서 그들이 견뎌낸 인내의 힘은 바로 희생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낙엽이 없으면 해우소가 존재하지 못하지만 그 바위와 기둥 또한 없으면 해우소는 존재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삶의 해우소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삶에도 고통의 해우소를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내 인생의 해우소 한 채 짓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쓴 시들이 선암사 해우소 나무기둥만 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시는 내 인생의 기도처이자 해우소였다.
나는 가끔 햇볕이 스며드는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기도하는 나를 상상해본다. 이 얼마나 평화스럽고 진지한 인간의 자세인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 시를 쓰는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단에 얼굴을 내민 지 벌써 38년이 되었다. 세월이라는 시간의 힘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시간의 힘이 내 인생의 길을 제시하고 이끌어주었다. 세상에는 가도 되는 길도 있고 안 가도 되는 길이 있지만 꼭 가야 하는 길이 있다. 나는 이제야 그 길이 시와 시인의 길임을 확신한다. 그동안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를 쓸 수 없었지만 이제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를 써야 한다. 돌이켜보면 고통이 없는 순간은 없었다.
시인이 죽으면 대표작 한 편이 남는다. 언젠가 '대표작으로 남을 시만 일찍 써버리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남기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생을 바쳐야만 대표작 한 편이 겨우 남는다. 내게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않고 있다.
살아가면서 자꾸 억장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히더니 최근에는 시가 짧아졌다. 인생이 짧은데 시가 어찌 길어질 수 있으랴. 인간의 언어는 침묵으로 완성된다. 침묵의 절벽 끝에 한 채 서 있는 수도원처럼 시는 무언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그 무엇임을 새삼 깨닫는다.
- <시평> 201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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