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그때 흰나비가 돌아왔다/이기철

김욱진 2017. 7. 2. 08:48

        그때 흰나비가 돌아왔다

             이기철

 

도라지꽃 곁에 쪼그려 앉아 '너도 대구에 가고 싶니' 물으면

도라지꽃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창문을 달면 비둘기가 올 거라 믿었다

물새 발자국을 따라가다 되돌아온 오후엔

맨발로 산그늘에 앉아 동화를 읽었다

학교에서 배운 말들은 한 마디도 읽지 않고

고추밭에 간 어머니의 호미 소리만 읽었다

 

43년에 태어나서 43년 동안 시를 쓴다

손이 작아서 가슴이 여려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시를 쓸 때 내 어깨 위로 흰나비가 날아왔다

홑적삼이 땀에 젖은 어머니가 날아왔다

  

-시집 『흰 꽃 만지는 시간』(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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