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흰나비가 돌아왔다
이기철
도라지꽃 곁에 쪼그려 앉아 '너도 대구에 가고 싶니' 물으면
도라지꽃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창문을 달면 비둘기가 올 거라 믿었다
물새 발자국을 따라가다 되돌아온 오후엔
맨발로 산그늘에 앉아 동화를 읽었다
학교에서 배운 말들은 한 마디도 읽지 않고
고추밭에 간 어머니의 호미 소리만 읽었다
43년에 태어나서 43년 동안 시를 쓴다
손이 작아서 가슴이 여려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시를 쓸 때 내 어깨 위로 흰나비가 날아왔다
홑적삼이 땀에 젖은 어머니가 날아왔다
-시집 『흰 꽃 만지는 시간』(민음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