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송찬호
딱! 콩뚜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
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
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더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께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
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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