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 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
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신계사 앞입니다" "요거이 조국통일
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산화한 귀한 거이 아닙네까?" "몰라
봤습니다" "있던 자리에 고대로 갖다놓아야 되지 않습네까?"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합네까?" "일행과 같이 출국해
야 하는데요" "그럼 그쪽 사정을 백천번 살펴서 우리 측에서
갖다놓겠습네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네다 통일되면 시인
동무께서 갖다놓을 수도 있겠디만, 고사이 잃어버릴 수도 있
지 않겠습네까? 그럼 잘 가시라요"
한국전쟁 때 불탔다는 신계사, 그 기왓장 쪼가리가 아니었다
면 어찌 북측 동무의 높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리요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해야겠다, 쓰다듬고 쓰다듬는 가슴속
작은 지붕 조국산천에 오체투지하고 있던 불사 한 채
-시집 '정말'(창비 2010)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은 금이 간다/서하 (0) | 2018.11.29 |
---|---|
로그인/박지웅 (0) | 2018.11.26 |
탁본, 아프리카/문인수 (0) | 2018.11.18 |
말/이기철 (0) | 2018.11.10 |
연탄 한 장/안도현 (0) | 2018.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