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비수기의 결혼식/변희수

김욱진 2018. 12. 10. 11:22

      비수기의 결혼식

       변희수


한곡의 노래가 사라지는 동안

녹고 있는 얼음

서로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아름다운 조각이 녹고 있었다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새하얀 드레스가 녹고 있는 신부

불가능한 얼음처럼

붉은 입술과 검은 속눈썹이 흘러내렸다

시들지 않는 꽃을 주세요!

허공으로 떠오른 손들이

얼음 속으로 꽃다발을 던져 넣었다

입과 귀가 동시에 녹아내렸지만

영원한 리본이 속삭였다

아름다워요!

얼음 속에서 처음 나온 것처럼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 돌아서서 눈물을 찍어냈다

사는 동안

사라지는 동안

뜨거운 불이 발등에 떨어지는 동안

먼저 녹아서 흐르는 노래

다른 방의 연주자가

한여름 밤의 꿈을 연습하고 있었다

얼지 않았는데도

추웠다


『시와 문화』(201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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