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동백의 전언/심강우

김욱진 2019. 3. 24. 19:03

동백의 전언

 심강우


노을을 보면서 나를 생각지 말아다오

엄동설한에 세간의 길이 얼마만큼 짧아졌는지

철없는 동박새에게 묻지 말고 다만 오랜 눈빛으로

그 많은 흙손을 종횡으로 엮은 사철 곧은 잎사귀들

심장에 비끄러맨 푸른 기치(旗幟)를 기억해 다오

 

향기가 없다고 손을 젓지 말아다오

구애의 몸짓을 읽기에 내 심안의 조도는 너무 낮고

다행히 내가 머문 계절은 벌과 나비를 기르지 않고

나는 홀로 붉어 계절에 줄 서지 않으리니

 

나를 은둔자라 부르지 말아다오

섬을 통째로 물어뜯던 바람을 기억한다면

뒷산에서 벼랑까지 붉디붉게 노여움을

길들인 걸 기억한다면

 

낙화는 꽃에게 첫 단추,

단추를 채우는 손길은 그날을 위한

내가 나를 여미는 길이라는 걸 안다면

내 목으로 제단을 쌓는 이유도 알겠지

 

그러니 왜 동백인지 묻지 말아다오

붉다고 다 동백이 아닌 걸 안다면,

바람에게 피를 묻힐 순간을 주지 않는

부릅뜬 자결의 결심을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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