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의 전언
심강우
노을을 보면서 나를 생각지 말아다오
엄동설한에 세간의 길이 얼마만큼 짧아졌는지
철없는 동박새에게 묻지 말고 다만 오랜 눈빛으로
그 많은 흙손을 종횡으로 엮은 사철 곧은 잎사귀들
심장에 비끄러맨 푸른 기치(旗幟)를 기억해 다오
향기가 없다고 손을 젓지 말아다오
구애의 몸짓을 읽기에 내 심안의 조도는 너무 낮고
다행히 내가 머문 계절은 벌과 나비를 기르지 않고
나는 홀로 붉어 계절에 줄 서지 않으리니
나를 은둔자라 부르지 말아다오
섬을 통째로 물어뜯던 바람을 기억한다면
뒷산에서 벼랑까지 붉디붉게 노여움을
길들인 걸 기억한다면
낙화는 꽃에게 첫 단추,
단추를 채우는 손길은 그날을 위한
내가 나를 여미는 길이라는 걸 안다면
내 목으로 제단을 쌓는 이유도 알겠지
그러니 왜 동백인지 묻지 말아다오
붉다고 다 동백이 아닌 걸 안다면,
바람에게 피를 묻힐 순간을 주지 않는
부릅뜬 자결의 결심을 안다면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 망울 하나 낳아놓고/우영규 (0) | 2019.03.25 |
---|---|
겨자씨가 웃다/사윤수 (0) | 2019.03.24 |
어느 날 나는/박지영 (0) | 2019.03.13 |
봄맞이/법정 스님 (0) | 2019.03.13 |
너를 기억할 수 없게/박지영 (0) | 2019.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