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겨자씨가 웃다/사윤수

김욱진 2019. 3. 24. 21:38

겨자씨가 웃다 

사윤수

  

108이 억이다 여기까지 가져본 적 있다

1012을 조라 하고 1016을 경이라 하는데

여기까지 들어본 적 있다

1020을 해라 한다 해는 처음 듣는 말

하늘의 해도 아니고 땅의 돼지도 아니고

이제부터 어떻게 가는지 몰라

삐뚤빼뚤 눈 감고 길을 잃는다

어디쯤에서 어긋났는지 누가 먼저 손을 놓았는지

눈 뜨고도 헤맨다

돌아갈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1048 극에 달해 어느새 1052 항하사

그 아득한 모래벌판에

빈 몸을 누인다

 

안다는 건 무얼 안다는 걸까

1064 불가사의 위로

불가사리 한 마리 지나가는 뜻을 안다는 말일까

1068 무량대수가 묵묵부답 먼산이다

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

사방 사십 리 크기 성에 겨자씨를 가득 채운 뒤

백 년마다 한 알씩 꺼내 마지막까지 다 꺼내도

아직 일 겁이 지나지 않는다는데

나는 넘어질 때마다 겁을 먹고 식겁十劫했다 한다

 

어기야 우는구나 내가

내 발등을 내가 찧어요

도끼는 두고 나를 버렸으나

단추 주워 양복 맞추니

식겁하고도 또 사랑해요

겨자씨가 웃는다 웃어요

 

그런데, 그런데 곧 죽어도 질문 하나

그 겨자씨 말예요

겨자씨는 누가 마지막까지 꺼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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