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줄 타령

김욱진 2019. 4. 7. 12:20

줄 타령


줄로 줄로 암암리에 취직을 쉽사리 하고 했던 시절  

못자리할 새끼줄 꼬고 앉아

이놈의 팔자 

줄이란 줄은 다 어딜 가고

배배 꼬이는 새끼줄만 한 마당

뱀 꼬리처럼 착 달라붙는다며

구시렁구시렁 줄 타령해본 적 있다 

아랍어학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아들 녀석

튀니지까지 가서 3년 남짓 아랍어 공부하고 돌아와

지 딴엔 아랍인 뺨치듯 줄줄 말한다며

아랍어 써먹는 곳이면 어디든 다 원서 내놓고

큰소리 뻥뻥 치며 줄불나게 돌아다니더니

3차 면접만 가면 줄줄이 떨어지고 오지 뭔가

허 참, 그놈의 줄이 뭔지

TV 채널 돌리다 보면 

고관대작 줄로 줄로 자식 취업시켰다 들킨 뉴스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

시국이 어찌 좀 수상하다, 수상하다 그러고 있던 참 

처마 밑 의뭉스런 왕거미 한 마리  

공중에서 줄을 타고 쏜살같이 낙하하더니

곧바로 따라온 새끼 거미 일자리 은근슬쩍 마련해주고는

줄 없는 척하며 제자리로 쉬 돌아가지 뭔가

저 봐라, 줄 있는 놈은

아직도 지 새끼 취직쯤이야

식은 죽 먹듯 뚝딱 시켜버린다니까 


-2019 사람의 문학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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