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시, 앗!
섣달그믐밤 연탄 한 장 피워놓고
골방에 누워 감 홍시 하나 물컹 삼켰더니
고놈의 씨가 목구멍에 걸려
넘기지도 토하지도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다 시가 되어버렸다
것도 모르고 날로 꼴깍 삼킨 시
명치에 딱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고놈의 시를 살려봐야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새벽녘 안도현 씨가 씨익 웃으며 찾아와
감이 익으면
삼킬 것도 토할 것도 없이
다 시가 된다고 그러지 뭔가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죽은 시를 살리는 것도 감
날로 삼킨 시를 푹 삭히는 것도 감
뭣이 죽은 듯 살아있는 감이라고
설날 아침
제상 맨 앞줄 터줏대감처럼 앉아 절 받는 감
씨가 그랬다
너의 고조모는 성주 이씨, 증조모는 장수 황씨, 조모는 인천 채씨
씨가 뭔 줄도 모르고 시집 와서 그냥 씨 뿌리고 산 것도 감이라고
지방문에 걸렸다, 그게 다 시가 되어
불씨처럼 화끈 달아오르면
감은 요리조리 데치고 볶고 삶고
그걸,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그러지 뭔가
앗!
-2019 대구문학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