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은행나무님의 말씀
-속미인곡 풍으로
삼년 만에 그 분 만나 뵈러 갔더니
수상한 이 시국에 어인 일로 예까지 발길이 닿았는고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또 보는구만
몇 해 전 시화전 한다며 와서
내게 꾸벅 절하고 막걸리 한 사발 부어주길래
자네 얼굴 유심히 봐두었네그려
낙동 칠 백리 강줄기 따라
사백 성상 한 곳에 뿌리 내리고 살다보니
정신줄만은 놓지 않고 올곧게 살아있다네
그날, 내 말과 내 생각 고대로 받아 적은
자네 시를 골똘히 읽은 기억 아직도 생생하네
이곳 들르는 이들은 하나같이 뭔가 있는가 싶어 찾아와
뱀 허물 같은 내 껍데기만 실컷 쳐다보고 간다네
여기, 지금, 누가 서있는가
어릴 적 나는 소학 책만 읽고 다녀 소학동자라 불렸다네
그 소학이 무럭무럭 자라 한훤당이 되고
주렁주렁 매달리는 손주 녀석들 다 품고 사는 김굉필 나무가 되었다네
사백 년 묵은 뱀 한 마리 구불텅구불텅 제 그림자 지우며 강가로 기어드는
늦가을 어스름 녘, 도동서원 은행나무
라는 님의 말 말씀
-2018 시문학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