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퇴고
길상호
앉은뱅이 밥상을 펴고
시 한 편 다듬는 저녁,
햇살이 길게 목을 빼고 와
겸상으로 앉는다
젓가락도 없이 시 한 줄을
쭈욱, 뽑아들더니
허겁지겁 씹기 시작한다
너무 딱딱한 단어 몇 개
가시처럼 발라내놓고
익지 않은 수사들은
퉤퉤 뱉어내놓고,
넘길 게 하나 없었는지
잇자국 가득한 언어들
수북이 밥상 위에 쌓인다
노을보다 더 벌게져서
얼른 창을 닫고 돌아오니
시는 시대로 나는 나대로
발목을 잃은 앉은뱅이,
먹을수록 허기진 밥상은
잠시 물려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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