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일기․13
구천 떠돌다 간간이 돌아와
아야, 아야! 소리만 가느다랗게 들리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 구천302호
부처님 오신 날
죽이라도 한 그릇 나눠 먹었으면
참 좋을 법한 오늘
엄마 옆에 누워 있던 할매는 어디로 가셨네
저, 저 갔어…… 어젯밤 평온실로
거는 독방이란다
여보다 방값이 및 배 비쌀 낀데
간다는 얘기도 없이 가뿓다
그 할마씨, 노잣돈 자랑하더니만
거는 깔딱 고개 넘어갈 때 가는 곳이라던데
그나저나 나도 이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다 토하고 배가 아파
똥 눈 지는 달포가 넘었고
그래도 할머니는 아직 말할 힘이라도 좀 있으니
괜찮으신 편입니다
저희 엄마는 말문을 닫은 지 보름이 지났고
항문을 닫은 지는 두어 달이 다 돼가네요
얘깃거리라고는 죽거리밖에 없는 밤
죽이라도 한 숟갈 간신히 받아먹은 노모와
링거에 명줄 달고
죽을힘 다해 버티고 있는 그 할머니 사이
거리는, 죽도록 재 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처님 오신 날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 보았으면
참 좋을 법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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