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노모 일기․13

김욱진 2020. 10. 27. 13:08

노모 일기․13

 

 

구천 떠돌다 간간이 돌아와

아야, 아야! 소리만 가느다랗게 들리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 구천302호

부처님 오신 날

죽이라도 한 그릇 나눠 먹었으면

참 좋을 법한 오늘

 

엄마 옆에 누워 있던 할매는 어디로 가셨네

저, 저 갔어…… 어젯밤 평온실로
거는 독방이란다
여보다 방값이 및 배 비쌀 낀데

간다는 얘기도 없이 가뿓다
그 할마씨, 노잣돈 자랑하더니만
거는 깔딱 고개 넘어갈 때 가는 곳이라던데

그나저나 나도 이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다 토하고 배가 아파

똥 눈 지는 달포가 넘었고

그래도 할머니는 아직 말할 힘이라도 좀 있으니

괜찮으신 편입니다

저희 엄마는 말문을 닫은 지 보름이 지났고

항문을 닫은 지는 두어 달이 다 돼가네요

 

얘깃거리라고는 죽거리밖에 없는 밤

죽이라도 한 숟갈 간신히 받아먹은 노모와

링거에 명줄 달고

죽을힘 다해 버티고 있는 그 할머니 사이

거리는, 죽도록 재 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처님 오신 날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 보았으면

참 좋을 법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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