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무섬마을 가는 길

김욱진 2020. 11. 8. 20:19

무섬마을 가는 길

김욱진

 

시인도 거절도 못 할 21세기 문학 강연 초청을 받고

도리 없이 수도리 무섬마을 가는 길

소낙비 쏟아지는 차창을 내다보며

무섬에 대한 숨은 뜻 골똘히 상상해본다

산골짝에 무슨 섬마을이 있을 리 만무하고

없는 듯 있는 섬 같은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일까

강물 뺑 둘러싼 마을이라고

뭍섬이라 그러다 혹처럼 딸린 ‘ㅌ’

거센 댐 물살에 떠밀려가고 무섬이 된 걸까

섬 아닌 뭍을 보고 무섬이라 불러

물이 저절로 돌아나간 걸까

아니면, 그냥 뭍에 폭 가린 섬 같잖은 마을일까

무섬이라 무섬…, 무섬만 자꾸 되뇌다 보니

흥겹게 들썩이는 노랫가락마저

나를 휘돌아 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물 도리도리 돌아나가는 수도리

외나무다리가 굽이굽이 휘어진

내성천 가로질러 건너고

담 너머로 어슴푸레 새어 나오는

초가집 호롱 불빛 섬섬히 와 닿는 저녁

연기는 굴뚝을 빠져나와

둥글 박 나뒹군 지붕 위로

무슨 섬처럼 무심히 사라진다

천상, 물 위에 떠 있는 무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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