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일기․3
습은 참 무서운 거다
교단생활 33년을 하고 나온 지 어언 3년째
집에서 뾰족이 할 일은 없고
익힌 거라곤 접장 노릇 한 일밖에 없으니
그것도 큰 보람이라고
습관적으로 옷 단정히 차려입고 구두끈 매고
현관문 CCTV에 출근 눈도장 찍고
아파트 화단 앞 꼿꼿이 지키고 서서
등교한 아이들 출석 체크하듯
나무 이름 꽃 이름 일일이 다 불러보는 거다
성도 이름도 모르고 지나쳤던 꽃과 나무들
물 주고 거름 주고
벌 나비 날아들 땐 사진도 찍어주고
눈 마주칠 적마다 이름 한 번 더 불러주고
어깨도 톡톡 두들겨주고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업 시간 조는 아이도 없고
인기도 쑥쑥 올라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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