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사랑
지난해 겨울 섬나라 피지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거실 한구석 빈 항아리에다 물고기 예닐곱 마리 입양했다
며칠이 지나도 낯설어하는 것 같아
벵가섬에서 주워 온 산호랑 조개 소라 전복 껍데기
어항 속에다 넣어주었더니
여기가 남태평양 바다인 줄 알고
제집처럼 드나들며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날부터 한 가족이 된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 벵가섬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고
물고기들과 얼굴 마주 보며 오순도순 밥을 먹었다
뭍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사이
우리는 서로 닮아가기 시작했다
밤이면 이 방 저 방 숨바꼭질하다
우린 산호 근처 소라 방에 소복 모여 잠들 때도 있고
뜬눈으로 지새며 서로 입질할 때도 있었다
어린 것들이 살랑살랑 헤엄치고 다닐 때
우리 부부는 팔다리 엉덩이 요리조리 흔들며
지느러미 춤 따라 추었다
4분의 4박자 스텝 밟는 지르박 춤 열기에
선풍기도 굳은 허리 좌우로 비틀며 돌고 돌았다, 밤새
맞바람 맞은 물고기 새끼 세 마리
다음 날 아침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늘그막에 춤바람 난 우리 부부
외눈박이 사랑에 눈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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