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외눈박이 사랑

김욱진 2020. 11. 8. 20:23

외눈박이 사랑

 

 

지난해 겨울 섬나라 피지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거실 한구석 빈 항아리에다 물고기 예닐곱 마리 입양했다

며칠이 지나도 낯설어하는 것 같아

벵가섬에서 주워 온 산호랑 조개 소라 전복 껍데기

어항 속에다 넣어주었더니

여기가 남태평양 바다인 줄 알고

제집처럼 드나들며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날부터 한 가족이 된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 벵가섬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고

물고기들과 얼굴 마주 보며 오순도순 밥을 먹었다

뭍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사이

우리는 서로 닮아가기 시작했다

밤이면 이 방 저 방 숨바꼭질하다

우린 산호 근처 소라 방에 소복 모여 잠들 때도 있고

뜬눈으로 지새며 서로 입질할 때도 있었다

어린 것들이 살랑살랑 헤엄치고 다닐 때

우리 부부는 팔다리 엉덩이 요리조리 흔들며

지느러미 춤 따라 추었다

4분의 4박자 스텝 밟는 지르박 춤 열기에

선풍기도 굳은 허리 좌우로 비틀며 돌고 돌았다, 밤새

맞바람 맞은 물고기 새끼 세 마리

다음 날 아침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늘그막에 춤바람 난 우리 부부

외눈박이 사랑에 눈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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