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풍란
시집간 후로 연락 한번 없던 고향 여자 친구
십 년 만에 꽃 활짝 피웠다는 풍란 한 컷 카톡으로 찍어 보냈다
난이란 난을 다 평정하는데, 십 년 딱 걸렸다며
그 난이 시집살이처럼 모진 바람 참고 견뎌낸 풍란이었다니
십 년 전 난
대궁을 허공에다 밀어 올릴 줄도 몰랐고
허우대만 멀쩡한 난 속에 숨어
난인 척 난이 아닌 군자란을 꿈꾸었는데
군자는 고사하고 아무런 색도 향도 없는 못난이였다
난시에, 난청에, 난독증까지
그러고도 버젓이 난이라고 우겨대며 살았으니, 참
난 아직 난을 보고도 무슨 난인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는데
이 세상엔 꽃 한번 피워 보지 못하고 난, 난 그러기만 하다
이름도 못 짓고 떠난 난이 수없이 많다는 걸
난이란 난은 다 난세에 꽃을 피운다는 걸
난은 고요히 보여주고 들려주고 읽어주었다
난이 난 줄 알고서야 비로소 난장 부리지 않는다는 걸
난은 왜 뒤란에서 도란도란 엉겨 붙어사는지
해맑은 웃음 수줍게 머금고
아스라이 먼 옛 추억 하나둘 떠올려준다는 걸
난 구부정히 보고 듣고 읽었다
난죽을 치듯 비바람 불고 허기질 때
전 부쳐 먹는 부추, 아니 부초쯤으로 여겼던 풍란
이젠, 카톡 방에다 심어놓고
흔들릴 때마다 너도 풍란 나도 풍란 그러면서
지은 이름 하나, 너도나도풍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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