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2
거시기 말대로 나는 거시적으로 받아 적었다
마누라는 그 시를 미시적으로 읽었다
애면글면 쌀뜨물로 끓인 된장찌개 속에서
좁쌀만 한 바구미 한 마리 동동 뜨는 걸 보고
나는 미시적으로 밥맛이 뚝 떨어졌다
눈치 가로챈 마누라는 시치미 뚝 떼고
애먼 쌀눈 기죽이지 말라며 거시적으로 읽었다
그 질로 눈먼 나의 시는 시시비비에 휩싸였다
밥때만 되면 그 흔해 빠진 상 하나 받지 못하냐고
구시렁거리는 마누라 말투가 수상쩍기 시작했다
죽은 시 끙끙 움켜쥐고 오락가락하다 들키는 바람에
이젠 원고 청탁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시는 나를 세상 밖으로 내던졌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굶어 죽어도 시의 눈을 뜨고 죽어라
나는 아직 이토록 간절한 원고 청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마누라는 늘 거시기 앞에서 죽는 시늉을 했고
거시적인 것만이 시가 아니라고 발설하는 순간
거시기는 죽었다
미시적인 것이 곧 거시적인 것이라는 시풍에
거시기와 마누라 내통 사실이 다 드러났고
시쳇말로 시국은 어수선해졌다
마누라는 시고 나발이고, 어이 거시기
골방에 쌓인 먼지나 제대로 닦으라며
시도 때도 없이 씨불이고
밥그릇 설거지 시봉만 잘하고 살아도
시가 절로 쏟아지겠다며 시 부리고
정신이 버쩍 든다, 시 부린다는 말에
나는 여태 시는 고사하고 반찬투정만 부렸으니,
이렇게 펄펄 살아 있는 시어가 내 밥상머리 올라오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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