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씨/시, 앗!

김욱진 2020. 11. 8. 21:09

씨/시, 앗!

 

 

섣달 그믐밤 연탄 한 장 피워놓고

골방에 누워 감 홍시 하나 물컹 삼켰더니

고놈의 씨가 목구멍에 걸려

넘기지도 토하지도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다 시가 되어버렸다

것도 모르고 날로 꼴깍 삼킨 시

명치에 딱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고놈의 시를 살려봐야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새벽녘 안도현 씨가 씨익 웃으며 찾아와

감이 익으면

삼킬 것도 토할 것도 없이

다 시가 된다고 그러지 뭔가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죽은 시를 살리는 것도 감

날로 삼킨 시를 푹 삭히는 것도 감

뭣이 죽은 듯 살아 있는 감이라고

설날 아침

제상 맨 앞줄 터줏대감처럼 앉아 절 받는 감

씨가 그랬다

너의 고조모는 성주 이씨, 증조모는 장수 황씨, 조모는 인천 채씨

씨가 뭔 줄도 모르고 시집와서 그냥 씨 뿌리고 산 것도 감이라고

지방문에 걸렸다, 그게 다 시가 되어

불씨처럼 화끈 달아오르면

감은 요리조리 데치고 볶고 삶고

그걸,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그러지 뭔가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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