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모과에 대한 단상

김욱진 2020. 11. 8. 21:09

모과에 대한 단상

 

 

방 한 모퉁이 책상 위엔

한 열흘 전쯤 고향 집에서 주워 온

모과 한 개 뎅그러니 놓여 있다
낯설이 해서 그런지 얼굴색이 노래지고

주근깨 같은 까만 점도 후벼 파주고 싶을 만큼 생겼다

그 단새 구멍 두어 군데 숭숭 나 있는 흠집
나의 귀지 같은 더께 덕지덕지 앉은 구멍 속 한참 들여다본다

흠집은 암갈색으로 점점이 번지는 중이다
더군다나 몸통은 밀가루 반죽 짓이겨놓은 듯 울퉁불퉁하다
과일 망신 다 시킨다는 그 모과

온몸 쥐어짠 기름 반들반들 내뿜으며 웅숭깊은 향 풍긴다

아, 저 향수 속으로 나를 찾아 나서면

언제쯤 그곳에 가닿을 수 있을까

못생긴 인형처럼 앙증맞은 한 개구쟁이가

내 맘을 온통 다 파먹어 들고 있다

'♧...수상한 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自序  (0) 2020.11.08
목차-64편  (0) 2020.11.08
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0) 2020.11.08
씨/시, 앗!  (0) 2020.11.08
누에씨  (0) 202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