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나가 뭐길래

김욱진 2020. 12. 5. 22:51

나가 뭐길래

 

 

기사를 봤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했다 탈락한 구순 할아버지

 

요번엔 내 차롄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오래된 나가 더 있었나 보네

나가 뭐길래

별거 아닌 줄 알고 숨겨뒀던 나

어느새 녹이 다 슬어버렸다

나와 나 사이

장벽을 허무는 것도 나였단 말이지

나도 몰래 나를 탓하며

이젠 다시는 속지 말아야지

38선쯤이야 나만 먹으면 언제든 넘어갈 수 있어

이렇게 나를 달래며 살살 나 먹어 왔는데

아직도 나가 모자라 떨어졌다 하니

나를 떨어뜨린 그놈의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고

나만 맨날 손꼽아 세며

어리광부리는 나가 되고 말았네

저승 가기보다 더 힘들어진 저 북녘 고향

나 하나 더 먹은 형 살아 있다는 소식에

나를 먹고 날을 먹고 꾸역꾸역 살아 있었는데

이제, 나만 같고 떼쓰는 날

몇 날이나 남았을꼬

 

(2020.9.28 동양일보 아침을 여는 시)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상한 시국3  (0) 2020.12.12
노모 일기·7  (0) 2020.12.05
거울 보는 새  (0) 2020.12.05
非비  (0) 2020.12.05
누에씨  (0) 20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