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비
김욱진
겉보기엔 이란성 쌍둥이 같고
아니, 지네 발가락 같고
아니 아니, 자물쇠 구멍 비비대는 열쇠 같은데
非는 아니다, 아니다 그런다
관상을 보니 올곧은 성품 타고난지라
아닌 것은 아니다, 딱 잘라 말하는 선비 기질이 있고
때로는 말머리 바짝 달라붙어
은근슬쩍 비비 꼬는 노비 기질도 있어
난데없는 시시비비에 곧잘 휘말릴 거 같다
(혹자는 非가 양비론적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만)
천생 非는 非다
주인 앞에서 바른말만 콕콕하는 비비
새의 양 날개가 똑같아 보여도
오른쪽 날개는 왼 날개로 쓰지 못하고
왼 날개는 오른쪽에 달지 못한다
서로 맞지 않아서
아니다, 아니다
서로 아니다, 라고 하지만
새는 왼쪽 오른쪽 날개 둘이 있어야 날 수 있다
너와 나도 그렇다
둘이 아니다 아니다, 우겨대면서도
하나가 아니다
좌우간에 非는
똑바로 놓고 봐도 非
거꾸로 뒤집어 놓고 봐도 非
둘이 하나다
(2020시인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