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김욱진
편을 갈라 화투를 치다 보면
패가 잘 풀리는 사람과 한 편이 되는 날은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그저 푹 무질고 앉아 싸 붙이고는 엉덩이만 들썩여도
돈이 절로 굴러 들어온다
패라는 게 그렇다
꽃놀이패에 걸려
패싸움을 하다가도
팻감이 없으면
한 방에 폐가망신 해버리기도 하고
패거리도 그렇다
얼씬 보기엔 반상 최대의 패처럼 보여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 패거리 저 패거리 기웃거려 보는 거다
별 밑천 없이 들락날락하기도 편하고
급할 시는 그 패를 마패처럼 내밀어
은근슬쩍 방패막이로 써먹기도 하고
팻감이 궁할 땐
이 패에서 저 패로
저 패에서 이 패로
철새처럼 줄줄이 옮겨 다니면서
늘상 화기애애한 척
돌돌 뭉쳐 돌아다니며 놀고먹기엔 딱 그저 그만이다
패가 폐가 되는 줄도 모르고
패거리가 난무하는 세상
한 구석엔
패도 패거리도 아닌 부패가 암암리 도사리고 있어
나는 일찌감치 문패조차 내걸지 않았다
(2020.7.6 시인 뉴스 포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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