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뭐길래
기사를 봤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했다 탈락한 구순 할아버지
요번엔 내 차롄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오래된 나가 더 있었나 보네
나가 뭐길래
별거 아닌 줄 알고 숨겨뒀던 나
어느새 녹이 다 슬어버렸다
나와 나 사이
장벽을 허무는 것도 나였단 말이지
나도 몰래 나를 탓하며
이젠 다시는 속지 말아야지
38선쯤이야 나만 먹으면 언제든 넘어갈 수 있어
이렇게 나를 달래며 살살 나 먹어 왔는데
아직도 나가 모자라 떨어졌다 하니
나를 떨어뜨린 그놈의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고
나만 맨날 손꼽아 세며
어리광부리는 나가 되고 말았네
저승 가기보다 더 힘들어진 저 북녘 고향
나 하나 더 먹은 형 살아 있다는 소식에
나를 먹고 날을 먹고 꾸역꾸역 살아 있었는데
이제, 나만 같고 떼쓰는 날
몇 날이나 남았을꼬
(2020.9.28 동양일보 아침을 여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