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겨울나무 / 김종택

김욱진 2020. 12. 12. 20:49

겨울나무

김종택

 

 

밤길을 걷다가

길모퉁이에 혼자 서 있는

나목(裸木)을 만났다
 
밤이 이처럼 깊도록 눕지 않고

빈 몸으로 서 있는 것이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아

다가가 눈 감고 끌어안으며 물었다

비로소 나목이 입을 연다
 
평생을 베풀고 살았어요

열매도 그늘도 풍경도 주고 살았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며 살았어요

이 겨울이 가면 봄이 또 오겠지

떠나간 그 사람도 찾아오겠지

변함없이 살았어요

봄에는 꽃 피우고 가을이면 낙엽 지우고

참고 참으며 살았어요

온갖 수모 발길질 참으며 살았어요
 
그래도 겨울밤이 이렇게 깊어 가면

혼자 울어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독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따라갈 수 없는 슬픔에

혼자 이렇게 밤마다 울어요
 
다 듣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울지는 마

이 엄혹한 계절을 살면서

아프지 않은 생명 어디 있더냐

나무야 겨울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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