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김종택
밤길을 걷다가
길모퉁이에 혼자 서 있는
나목(裸木)을 만났다
밤이 이처럼 깊도록 눕지 않고
빈 몸으로 서 있는 것이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아
다가가 눈 감고 끌어안으며 물었다
비로소 나목이 입을 연다
평생을 베풀고 살았어요
열매도 그늘도 풍경도 주고 살았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며 살았어요
이 겨울이 가면 봄이 또 오겠지
떠나간 그 사람도 찾아오겠지
변함없이 살았어요
봄에는 꽃 피우고 가을이면 낙엽 지우고
참고 참으며 살았어요
온갖 수모 발길질 참으며 살았어요
그래도 겨울밤이 이렇게 깊어 가면
혼자 울어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독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따라갈 수 없는 슬픔에
혼자 이렇게 밤마다 울어요
다 듣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울지는 마
이 엄혹한 계절을 살면서
아프지 않은 생명 어디 있더냐
나무야 겨울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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