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언니야 우리는 / 정끝별

김욱진 2021. 8. 26. 16:33

언니야 우리는

정끝별

 


우리는 같은 몸에서 나고 같은 무릎에 앉아 같은 젖을 빨았는데

 

엄마 다리는 길고 언니 다리 짧고 내 다리는 더 짧아

긴 다리에 짧은 다리를 엇갈려 묻고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천사만사 다만사, 조리김치 장독간, 총채 빗자루 딱,

한 다리씩을 빼주고 남는 한 다리는 술래 다리

 

언니야 우리는 같은 집에서 자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남자들과 살았는데

너는 언니라서 머리가 길고 나는 막내라서 머리가 덜 길고

남자들을 위해서 씻고 닦고 삶고 빨고 낳고 먹이느라 죽을 듯이 엄마처럼 하얘지도록

너는 언니라서 더 꿇고 나는 동생이라서 조금 덜 꿇고

 

우리는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아버지 오빠들이 우리에게 어떤 손자국을 남기고 어떤 무릎을 요구했는지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어깨를 떠밀었는지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스스로에게 자물쇠를 채웠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엄마의 입이 되고 있는지

 

너는 먼저 나서 더 싸우고 나는 나중 나서 더 잘 싸우고

너는 먼저 피 흘려서 곰이 되고 나는 나중 피 흘려서 늑대가 되어

 

그래 우리는 같은 성으로 자라 똑같은 결혼을 하고 똑같이 아이들을 키우며 또 같이 울었지

 

공깃돌을 줍다 빨래하러 가자 두 손을 잡고

물에 빠진 내 손을 붙잡아준 네 손

오래 매달리기를 하다 팔이 빠진 나를 등에 업어준 네 손

나란히 엎드려 팝송을 듣고 일기와 편지를 쓰고 생리대를 나눠 쓰던 우리 두 손

늦은 밤 굳게 잠긴 철대문을 몰래 열어주던 서로의 두 손을 꼭 붙잡고

 

그래 언니야 우리는 같은 엄마의 여자였고 서로의 여자였어 그러니까 서로의 애기였고 서로의 얘기였어

 

너는 언니라서 더 지치고 나는 동생이라서 아직 덜 지치고

너는 맏딸이라서 더 외롭고 나는 막내딸이라서 아직 덜 외롭지만

더 외롭고 더 지친 엄마의 지린내 나는 다리를 닦아주며 마주 앉아 서로의 다리를 엇갈려 묻고

다리 사이에 내려앉은 서로의 어둠을 한 다리씩 빼내며

아기새들처럼 목청껏 한소리로 노래하지

 

니다리 내다리 짝다리, 천근만근 안다리, 주홍마녀 유리벽, 강물 파도야 싹,

묻힌 무다리에 새파란 무청 같은 날개를 달아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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