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나무 그림자
이병률
눈 그친 깊은 밤 산사에서였다
새 울고 마음이 더욱 허전하여 창호 바깥의 달빛을 가늠해 보는데
옆 방에 묵던 여행자가 내 방 앞에 서서 달빛을 가로 막고 있었다
그림자는 먼 곳을 향하여 서서 부르르 몸을 떨더니 옷을 하나 둘 벗어 허공으로 던지는 듯하였다
그것은 푸르륵 푸르륵 소리를 내며 나무에 올라 앉아 신산스럽게 흔들리는 듯하였다
잠시 정적이 더 깊어진 듯도 하였다 달빛이 진해졌다고도 느꼈다
문을 열어 나 또한 마루에 서서 사방을 더듬다 어디론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사람의 옷 껍질을 벗고 네 발로 기어갔다는 것을
어둠 한가운데 걸린 목어가 그 발자국들을 향해 진저리쳤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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