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욱진 2021. 11. 26. 09: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자년 말 고삐 잡고

말 엉덩이 툭, 쳐 봅니다

다급히, 지나가는 말처럼……

우리 속엔 말이 말을 물고 돌아다니는

코로나라는 말만 우글거렸어요

일 년 내내 우리는 그 말을 길들였지요

말 많은 나는 된서리를 맞았어요

우리 속에 갇힌 수많은 말들이 말문을 잃어버렸거든요

참다, 참다 못해 말꼬리라도 한번 슬몃 잡으면

그 말은, 말인즉슨

말이 아닌 비말 취급을 받고 말았으니 말이지요

말들은 다 숨죽이고 살 수밖에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했던가요

말과 말 사이 오간 비말은

거짓말처럼 번졌어요

말이란 말에는 다 끼어들고

소문이란 소문은 다 퍼뜨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들은 말머리 돌리지 않고 말꼬리만 잘랐지요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니, 할 수가 없었지요

저기, 끄레기 벗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흰 소 앞에서, 코로

나를 훤히 꿰뚫어 볼
둥근 우주 같은, 코뚜레를 떠올려 봅니다

 

(2021 대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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