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오탁번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시장 가는 길
감나무에 조랑조랑 열린 풋감을 보고
'푸른 감이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는단다'
엄마 말에 고개를 갸옷갸옷 하던 딸은
감나무가지가 휘어지도록 우는 매미울음 따라
엄마 손 잡고 까불까불 걸어갔네
가을 어느 날 해거름에 시장 가는 길
빨갛게 익은 감이 탐스러운 감나무가지에
하얀 낮달이 꼬빡연처럼 걸려 있었네
다 저녁에 되어 엄마 손잡고 돌아올 때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딸이 말했네
'엄마, 달님이 그새 빨갛게 익었어'
개미가 기어다니는 보도블록을 걸어오는 길
엄마가 까치걸음 하는 딸을 보고 눈을 흘기자
'아기 개미를 밟으면 엄마 개미를 못 만나잖아?'
앙증스러운 어린 딸의 말을 듣고 엄마는
처녀적 시인의 꿈이 다시 생각나 미소지었네
시인은 못 됐지만 이제 시인 엄마가 되었네
감나무가 빨간 등불 알알이 켜고 환히 비추는
아기 시인과 엄마가 시장 갔다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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